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97회
1. 바비킴, 아버지의 꿈을 노래하다
2. 빽가,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110114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바비 킴, 아버지의 꿈을 노래하다/ 빽가 ,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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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비킴, 아버지의 꿈을 노래하다
1. ‘소울’ 대부의 다사다난 인생사
2011년 MBC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며 이름을 널리 알린 바비킴. 대중들은 신인
인가 했었지만 사실 그는 ‘사랑 그놈’, ‘고래의 꿈’ 등 많은 히트 곡을 배출한 가수다.
1994년 한 그룹의 래퍼로 데뷔한 그는 2004년 솔로 앨범 ‘고래의 꿈’을 발매하며 인
기를 끌기 까지 10년의 무명생활을 버텼다. 목소리가 이상하다며 음반사에 퇴짜를
받은 것도 여러 번, 가수를 할 목소리가 아니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노래를 부르
는 대신 그는 드라마 엑스트라와 영어 강사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무명생
활을 이겨냈다. ‘사연’ 많을 것 같은 소울 충만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마흔 둘의 독거
남. 그의 목소리에 숨겨진 특별한 사연을 <사람이 좋다>에서 들어보자.
제 목소리는 워낙 무명시절에 목소리가 이상하다 해서 콤플렉스가 있었죠. 그게
생기기 시작하면서 목소리는 듣지 말고 멜로디만 들으세요. 하면서 데모를 드리고
그랬죠.
- 바비킴 int 중 -
2. 어디서든 ‘이방인’ 이었던 어린 시절
1974년, 두 살 때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간 바비 킴. 당시 MBC 관현악단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는 더 큰 음악 무대를 꿈꾸며 고국을 떠난다. 하지만 현실
은 녹록치 않았다. 심각한 인종 차별도 경험했다. 어린 시절의 바비킴은 학교에선 매
일 싸움에, 멍이 가실 날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는 스무 살이 되었고, 낯
선 한국 땅을 밟게 되었다. 미국에서도, 고국에서도 바비킴은 언제나 ‘이방인’ 이었
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 공황 장애를 겪으며 힘든 시기를 보내기 까지…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늘 ‘이방인’으로 살아 온 바비킴, 본명 김도균, 이 남자의 노래를 들어
보자.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저는 세상한테 절대 손가락 질 하기 싫어요. 하지만 저 같
은 인생은 그렇게 미국에서 차별을 당하면서 남들이랑 다른 존재라는 걸 확실히 느
꼈어요. 또 제가 이 땅에서 사람들이랑 어울리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했죠.
스무 살 때 다시 한국으로 건너와서 언어도 안 통하고 다시 이방인 생활을 해야 한다
는 것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 바비킴 int 중 -
3. 아버지와 함께 부르는 ‘바비킴의 꿈’
빛나는 조명 아래 트럼펫을 연주했던 아버지는 바비킴의 우상. 멋진 아버지의 모습
은 바비킴에게 ‘스타’를 꿈꾸게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아버지는 생활고로 인해 트
럼펫을 잡던 손으로 티셔츠 장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힘든 음악인의 삶을 알기에
누구보다 아들이 그 길을 가지 않길 바랬던 아버지 김영근 씨. 어릴 적, 바비킴은 아
버지가 자신의 길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가수로서 대중에게 인정받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점차 그 꿈을 지지하게
되었다. 특별히 이번 새 음반에는 타이틀곡의 트럼펫 연주로 함께 하기도 했다. 바비
킴 에게 스타이자 영웅이었던 아버지. 지금도 그에게 아버지는 가장 인정받고 싶은
음악적 스승이다. 사실 부자는 음악적인 얘기를 제외 하면 금세 어색해지고 마는 사
이. 하지만 이 무뚝뚝한 부자도 무대에선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다. 30년의 세월을 뛰
어 넘은 바비킴 부자의 감동적인 무대를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보자.
어릴 땐 아빠처럼 되고 싶다. 나중에 커선, 고등학교 때부터 다시 음악을 하고 있
을 땐 제가 대신 스타가 돼서 아버지한테도 인정받고, 또 우리 가족을 위해서 제가
도움이 되는 아들이 돼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 바비킴 int 중 -
2.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1. 빽가, 죽음과 맞서 싸우다
인기 그룹 코요태의 래퍼 빽가(본명 백성현). 한창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던 2009년,
잦은 두통 때문에 병원을 찾은 빽가는 청천벽력 같은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그의 머
릿속에 테니스공만한 크기의 종양이 자라고 있었던 것. 10시간의 대수술 끝에 무사
히 눈을 떴지만, 지금도 각종 후유증을 떠안고 살며 매일매일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 재발 확률이 큰 병이기에 언제 위험한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를 일. 매일 아침
무사히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삶이다.
“(뇌종양 수술 후) 진짜 말 그대로 다시 태어난 거죠. 환생. 윤종신 선배님의 <환
생>이라는 노래 있잖아요. 다시 태어난 것 같아요. 내 모든 게 달라졌어요.”
- 빽가 INT 中
2. 다시 만난 나의 가족
뇌종양 투병 후, 빽가와 가족에게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무뚝뚝한 장남이었던 빽가
는, 전에 없이 살가운 아들이 되었다. 이전에는 마음에만 담아두었던 “사랑해”라는
말을 어머니에게 망설임 없이 건네고, 기타리스트인 아버지와는 음악 작업을 함께
하며 소중한 시간을 보낸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기에 모든 아픔을 이겨낼 수 있었
다고 믿는 빽가. 그와 가족에게는 함께 하는 매순간이 너무도 소중하다.
“(뇌종양은) 재발 가능성이 있는 병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또 원치 않는 상황이
올 수도 있거든요. 그렇게 됐을 때 제가 아픈 것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부모님에게
소홀하게 했던 것들이 생각나서 괴로울까봐 하루하루 진짜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노력하고 있어요.”
- 빽가 INT 中 -
3. 다시 찾은 꿈, 제2의 인생
대중들에게는 가수 빽가로 이름을 알리게 됐지만, 사실 그의 오랜 꿈은 사진작가였
다. 고등학교 때 사진을 전공했지만 비싼 학비 때문에 대학 진학의 꿈을 접어야 했
던 빽가. 용기 내 다시 카메라를 들었지만 그런 그를 ‘예술가 놀이하는 연예인’으로
만 보는 편견에 눌려 ‘by 100’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사진을 찍어야 했다. 그동안 비,
이효리, 유재석, 에픽하이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유명인들과 사진 작
업을 함께 하며 사진작가로 우뚝 선 빽가. 가수, 사진작가로서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재능기부를 통해 자신보다 어려운 이들에게 계속해서 손을 내밀고 있다. 선물 같이
주어진 제2의 인생을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함이다.
“(수술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짐)했던 게 뭐지? 생각해봤더니 ‘착하게 살자.
아름답게 살자.’ 기억이 딱 나는 거예요. 진짜 그렇게 한 번 살아 봐야 겠다… 제가
아직 아름답게 살진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 빽가 INT 中 -
비가 '사람이 좋다' 빽가 편에 출연했습니다. 빽가는 11월1일 방송된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 코요테 빽가와 사진작가 백성현으로 살아가는 일상을 공개했습니다.
요즘 톱스타들과 작업하며 사진 작가로 더 잘나가고 있는 빽가는 비와 예전부터 절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비는 "빽가 형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있어서는 누구한테도 지기 싫어하는 면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비는 이어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한다. '똑똑한 사람보다는 노력하는 사람이 더 나은거고 그보다 위에 있는 건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고. 빽가는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게 참 부럽다"고 말했습니다.
바비킴이 미국에서 당했던 인종차별을 언급했습니다.
이날 가수 바비킴이 출연해 인생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바비킴은 2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가 20살,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인종차별을 많이 당했다던 바비킴은 "나는 세상에 손가락질은 하기 싫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나 같은 인생은 그렇게 미국에서도 차별을 당하면서 스스로는 힘들었고 스무 살 때 한국으로 건너와서 언어도 또 안통하고 다시 이방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110114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바비 킴, 아버지의 꿈을 노래하다/ 빽가 ,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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