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살인자 - 죽음의 연기는 누가 피웠나?
# 걸리면 죽는다, 임산부 연쇄 사망 미스터리
지난 2011년 봄, 서울 A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던 임산부 다섯 명이 연쇄적으로 사망했습니다.
공통된 사인은 급성 폐질환. 원인도 치료법도 몰라 소위 ‘걸리면 죽는다’는 괴담이 산모들 사이에서 돌기도 했습니다.
감기 기운이 있다가 갑자기 호흡곤란이 오고, 급작스레 병세가 악화돼 한 달 안에 사망에 이르는 기이한 증세.
생애 가장 감동적이라는 출산의 순간, 이들에게 축복은 곧 비극이었습니다.
112815 그것이 알고 싶다 -침묵의 살인자 - 죽음의 연기는 누가 피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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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에서 중증 폐렴으로 입원하는 산모들은
(보통)일 년에 한두 명에서 세 명밖에 없습니다...
산모들이 중증 폐렴으로까지 가는 경우는 굉장히 흔치 않은 일이에요.
아 이건 뭔가 일이 생겼습니다.
뭔지 모르지만 굉장히 위험한, 우리가 모르는 뭐가 있다”
-홍수종 질병관리본부 폐손상조사위원회 공동 위원장
그런데 놀랍게도 산모들이 의문의 질환으로 사망하기 3년 전 봄,
똑같은 증상으로 영유아들이 사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유아연령에서... 계절적으로 초봄까지 (환자가)있다가,
또 그 이후에는 환자가 없어지고”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박준동 교수
산모와 아이들을 중심으로 매년 봄이면 발생했던 이 괴질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왜, 무엇이 엄마에게서 아이를, 아이에게서 엄마를 빼앗았을까.
# 희대의 발명품, 살인 무기가 되다
영유아 및 산모들의 죽음이 잇따르자 A병원 의료진은 이를 질병관리본부에 알렸고,
가족단위의 집단 발병이 이어지자 대대적인 역학조사가 시작됐습니다.
환자들의 진료 기록을 살피자 처음 이상이 생긴 곳은 기관지 주변.
전문가들은 흡입 가능한, 공기 중 떠다니는 무언가로 괴질의 원인이 될 용의선상을 좁혔습니다.
바로 떠오른 건 황사와 담배같은 유해 환경이었지만, 주로 집안에서 생활하는 임산부, 아이들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람들 사이에 묘한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내 아기를 위하여! 가습기엔 꼭 가습기OOO를 넣자구요”
-1995년 B가습기 살균제 지면 광고
사망자들 대부분 다른 사람들에 비해 각별히 건강에 신경 쓰고 있었고,
특히 실내 습도유지를 위해 가습기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습기 청결을 위해 당시 유행하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
# 143인의 죽음, 회피하기엔 너무 무겁다
놀랍게도 연쇄적인 산모 사망의 원인은 ‘가습기 살균제’였습니다.
마트에서 누구나 쉽게 살 수 있었던 이 제품으로, 무려 14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망자의 절반 이상(56%)이 영유아인 사상 초유의 참사!
가습기 살균제에는 대체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었던 걸까?
안타까운 참사가 일어난 지 4년째...
가습기 살균제 제조 및 판매 업체들은 피해자에 대한 사과나 피해보상은 묘연하다.
사법 처리된 책임자는 없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 속절없는 4년이 지났습니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이번 주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는 기묘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을 둘러싼 의문을 파헤쳐봅니다.
방송 일자 : 2015. 11. 28(토) 밤 11:10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이 집중 조명됐습니다. 28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침묵의 살인자-죽음의 연기는 누가 피웠나’라는 주제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을 둘러싼 의문을 파헤쳤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은 지난 2011년 폐 손상을 일으키는 가습기 살균제로 산모와 영유아 등 140여 명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이날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은 2009년 아이와 아내를 잃은 김 씨의 사연으로 시작됐습니다. 김 씨는 “아이가 기침을 심하게 해 감기인 줄 알았는데 증세가 심해졌다”며 “의사들도 병명을 알 수 없다며 점점 폐가 굳어간다는 말만 했다”고 말했다. 아이는 결국 숨졌고, 이후 며칠 만에 아내 역시 같은 증세를 호소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것이 알고싶다’ 측에 따르면, 이 같은 의문의 폐질환으로 산모나 아이가 사망한 사례는 2006년부터 해마다 발생했다. 봄이 되면 원인 모를 아이들의 죽음이 계속되다 여름 경이 되면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이런 현상은 해마다 반복됐다는 것.
현 질병관리본부 폐손상위원회 홍수종 위원장은 당시 전국 병원을 상대로 자체 조사를 한 결과 이같은 현상이 전국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 측의 태도는 미온적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원인 모를 폐질환이 가족 내 집단 발병한 사례가 확인됐고, 질병관리본부 측은 그제야 역학조사에 착수했다. 가장 먼저 고려한 건 환경이나 직업적 특성. 하지만 환자들의 폐 상태는 탄광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서나 발견될 수준으로 심각했다. 다음으로 환경적 요인을 고려했고, 3~4월에 집중 발견됐다는 점에 따라 여러 가지를 두고 조사를 하던 중 가습기 살균제라는 존재가 등장했습니다.
면밀한 조사 결과 해당 폐질환과 가습기 살균제의 교차비(연관성)가 47.3으로 나왔고, 동물 실험 결과에서도 가습기 살균제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결국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는 판매·유통이 중단됐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결과는 피해자 가족에게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아이를 잃은 피해자들은 “내가 더 죽고 싶었다. 내가 가습기 안에 살균제를 넣고, 아기한테 더 가까이 댔다”, “내가 가습기를 사서 살균제를 넣어주고 청소를 했다”며 자책감에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정부가 공식 확인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530명. 이 중 사망자는 143명. 이 중 절반 이상이 어린 아이였지만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처벌을 받은 업체도,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은 피해자도 없었다고 ‘그것이 알고싶다’ 측은 지적했습니다.
제작진은 전문가와 인터뷰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의 근본적인 문제를 확인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가습기 살균제 자체가 애초부터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되는 물건이라고 말했습니다. 건양대학교 의과대학 이비인후과 김종엽 교수는 “할리우드 영화 보면 마약할 때 어디로 하는가? 코로 한다. 코를 통해서 많은 약들이 쉽게 혈액 속으로 전달된다. 당연히 코로 들어가는 건 독성이 있으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중 가장 많은 피해자를 냈던 제품은 옥시 레킷벤키저의 제품. 옥시 측은 제작진의 인터뷰 요청에 “피해자의 고통은 공감하고 위로의 말은 전하지만 옥시의 제품이 사망의 원인이라는 건 인정할 수 없다. 제품 속 성분이 폐질환을 일으켰는지는 법정에서 그 진위를 가리겠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측 대리인 정남순 변호사는 “(옥시 측은) 정부의 역학조사 이런 것들이 굉장히 문제가 많다고 주장한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때문에도 여러 가지 증상들이 나타날 수 있는데 그런 것들(폐질환 원인)을 예단 내지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 아니냐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옥시 측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가습기 살균제 사용 중지 이후에도 비슷한 증상의 환자가 발생해야 하지만, 그 이후 비슷한 증상의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143명이나 숨졌지만 지난 4년간 관련 업체들이 받은 처벌은 허위과장 광고로 인한 과징금 5000여만 원이 전부였습니다. 2009년 5세 아들을 잃은 김 씨는 “피해자는 여기 있다. 그런데 가해자는 없다. 누가 가해자인가?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업체인가? 아니면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할 수 있게 허가해준 정부인가?”라며 원통해했습니다.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가습기 살균제에 국가에서 안전을 인증한 마크가 있었다며, 국가기술표준원과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의 입장을 들어봤습니다. 이에 국가기술표준원은 살균 기능이 있는 건 식약처의 소관이었다고 주장하고, 식약처는 세정제로 신고된 건 기술표준원의 소관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두 곳 모두 가습기 살균제가 당시 법으로 정해진 자신들의 관리 품목이 아니었다는 입장입니다.
환경부 측 입장은 어떨까. 관계자는 “당시 신고할 때 용도가 가습기 관련 용도로는 (유해성 심사서류가) 제출되지 않았다. 신청 당시 용도는 카페트 향균제, 고무 목재와 섬유의 향균제 이렇게 신청이 됐다”면서 “그 당시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서는 ‘이런 용도로 사용하겠다’고 신고하면 사실상 끝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용화 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 초빙교수는 “그 당시 현행법을 지켰지만 외국에는 오용을 막는 법이 있었고 우리나라는 없었던 거다. 그럼 그건 누가 책임을 지느냐. 그건 기업은 책임을 안 지는 거다.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은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은 정부 입법이었습니다. 법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설계를 못한 무한한 책임을 정부가 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월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국가의 책임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미비한 법이라도 어기지 않는 이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정부 부처도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당시 피해대책 마련을 위해 뛰어다니던 국회의원들은 그때의 상황이 마치 ‘핑퐁게임’을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폐 손상이니까 이건 보건복지부 소관이다’ ‘가습기 살균제라는 제조물이니까 이건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이다’(라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환경부 역시 관련법이 없다며 발을 뺐습니다.
2002년 3월 발병해 폐 이식 후 투병 중인 윤 씨는 “우리나라에서 안 살고 싶다. 너무 싫다. 국민을 진짜 생각해주는 나라로 가고 싶다”고 했다. 남편인 김 씨는 “휴대전화 메신저 창에 ‘2002년 3월 18일부터 제 시계는 고장났다’ ‘대한민국은 나한테 없다’고 써놨다”고 말했습니다.
2012년 8월 피해자들은 업체를 고소했지만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고 검찰은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는다며 ‘시한부 기소중지’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2014년 정부가 폐 손상 의심 사례 공식 조사 결과(거의 확실 127명, 가능성 높음 41명)를 발표한 후에도 수사는 재개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계속된 수사 재개 촉구에 1년 반만에 수사가 재개됐고, 올 10월 14일에서야 검찰은 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습니다.
김경진 변호사는 “4년이 지난 시점에 압수수색이 이뤄졌기 때문에 사건에 대해 여러 가지 조작이라든지 변형이 충분히 가능한 상태이다. 뒤늦은 수사는 상당히 의미가 없어 보인다. 너무 늦게 진행이 됐고, 그 자체만 가지고도 비판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신고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1~4등급으로 분류했습니다. 문제는 1~2 등급에만 의료비와 장례비를 지원한다는 것입니다. 생후 150일 아들과 31주 태아를 잃은 박 씨는 “태아는 판정 불가, 관련 없음 결과를 받았다. 정말 말이 안 나왔다”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산모가 피해자인 경우, 배 속에 있는 태아는 피해를 입었는지의 여부를 현재 과학으로서는 알 수 없다는 것. 강찬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모임 공동대표는 “3,4 등급에 있는 사람들은 한 번 죽었는데 두 번 죽게 되는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알고싶다’ 측은 “피해자 대부분이 어린 아이와 산모였던만큼 태아에 미친 영향과 아이들이 자라면서 겪게 될 수 있는 후유증에 대한 장기적인 관찰과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는 올해 12월 31일까지만 가습기 살균제 관련 피해 신고를 받겠다고 밝혔습니다.
11월 20일까지 추가로 신고된 피해자는 111명, 사망자는 22명. 가습기 살균제 관련 피해 신고는 12월 31일까지 한국환경산업기술원 환경피해구제실(02-380-0575)로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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