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1060회 만들어진 자백, 뒤바뀐 범인?!
누군가 죗값은 치렀고 공소시효조차 끝나버린 한 사건이 다시 심판받길 바라며 법원
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1999년, 강도 3명이 침입해 금품을 훔치고 그 과정에
서 한 할머니가 죽음을 맞이했던 이른바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이하 삼례 사
건)’이 그것입니다. 체포에서 수사와 현장검증, 그리고 재판에 이르기까지 고갤 숙이
고 죄인임을 자처하며 3년 6개월에서 5년 6개월까지 옥살이를 했던 소년 3인방이 십
수 년이 지난 2015년 지금 ‘무죄’임을 주장하며 다시 법의 심판을 받고자 합니다. 그렇
다면 ‘진짜 범인’은 누구인가?
111015 PD수첩 -만들어진 자백 뒤바뀐 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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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취재하던 제작진은 오랜 추적 끝에 그 진실의 열쇠를 쥔 한 남성을 어렵게 만
나 이야길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이야기하는 약 16년 전 그 날, 삼례 사건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의혹들. 그리고 진짜 범인은 부산에 있었다? 3인방의 억울함은 과연 증명
될 수 있을까.
■ 공권력이 뒤바꿔버린 범인?
“(사건 때문에)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해서 네가 생을 다하는 날까지 기도를 해드
려야 한다, 그걸 명심해라, 그랬더니 인섭이(가명)가 ‘(할머니를) 본 적이 없는데 어
떻게 기도를 하느냐’고··· 첫 마디가 그 말이었어요.”
ㅡ 교도소 교정위원 박영희 INT
대법원 상고심 재판이 열렸다. 결과는 어김없이 유죄 판결. 이로서 가해자들은 응당
벌을 받게 되었고 사건의 실체는 온전히 밝혀진 것처럼 보였다. 어느 날 교도소에 있
던 가해자 황인섭(가명)이 입을 열면서 사건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자
신들의 범행으로 사망한 할머니를 실은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뜻밖의 한 마디. ‘어쩌
면 이 아이들은 누명을 썼을지도 모른다’ 는 한 교도소 교정위원의 직감에 진실을 향
한 사건 추적은 시작되었습니다.
3인방의 말투가 자신이 들은 범인의 경상도 억앙과 다르다는 피해자의 증언, 당시 현
장 검증 영상 속에 담긴 아이들의 겁에 질린 표정과 범행 재현을 주도하는 듯한 경찰
의 석연찮은 행동, 그리고 ‘진짜 범인’을 안다고 이야기하는 누군가의 제보. 그렇다
면 3인방은 어떻게 자신들이 범인으로 둔갑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PD수첩]은 무고함을 주장하는 삼례 사건 가해자 3인방을 통해 피의자에게 무분별
한 폭행과 강압수사로 자백을 강요했다는 의혹을 받는 우리나라 공권력의 어두운 민
낯을 조명했습니다.
■ 허위 자백의 덫, 당신도 범죄자로 둔갑될 수 있다
“처음에는 안 그랬다고 했죠. 그런데 (검사가) 네가 자백하면 형량을 깎아서 집
에 갈 수 있다고··· 전 집에 가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했다고 했죠. (···) 조사 끝나고
선 집에 안 가고 구치소로 가는데 그때 체념했죠. 아니라고 할 걸.”
ㅡ 허위자백 피해자 김윤아(가명) INT
수사 과정에서 물리적인 폭행이나 협박과 같은 부작용은 많이 개선되었다는 평이지
만 아직도 문제점은 남아 있다. 진술거부 등 피의자의 방어권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부족한 상황에서 허위 자백으로 억울하게 가해자로 내몰리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 전
문가들의 지적이다.
송인석(가명) 씨는 지난 2009년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여전히 잊을 수 없다고 했
다. 그것은 아들이 125건의 절도 혐의로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다는 경찰서 측의 연
락이었다. 수사 과정에서 혐의는 무려 176건으로 불어났다. 경찰 신문 과정에서 범행
을 인정했던 아들의 자백은 곧 검찰 조사 단계에서 ‘허위’로 드러났다. 아버지의 직장
에 전화해 망신을 주겠다는 협박에 못 이겨 누명을 쓴 것이었습니다.
작년 10월 이른바 ‘수원 노숙소녀 상해치사 사건’의 가해자로 누명을 썼다가 국가손
해배상 판결을 받은 김윤아(가명) 씨 또한 자신이 겪었던 어이없는 상황을 똑똑히 기
억했다. 범행을 저지른 적이 없는데도 함께 기소되었던 친구들이 이미 실토했으니
얼른 자백하라는 요구와 함께 자백하면 형량을 깎아주겠다는 검사의 회유가 이어졌
다고 했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김 씨는 변호사는커녕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부
모님조차 동석할 수 없던 상황. 검사의 끈질긴 질문에 그는 결국 범행을 시인하는
‘허위 자백’을 하고선 법정에 서야 했습니다.
‘자백’을 절대적인 증거로 여기는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 속에서 허위 자백이 가져오
는 부작용은 무엇일까. [PD수첩]은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일반 성인도 허위 자백의
덫에 쉽게 빠질 수 있는지, 그 위험은 무엇인지 심리학 실험을 통해 점검해 보았습니다.
■ 누명을 벗을 마지막 기회, 재심
“새로운 증거 하나가 나왔는데 그것만 가지고 따져서 무죄라 할 정도의 명백한
증거는 발견되기 쉽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우스갯소리로 (진짜) 범인이 나타나서 자
백하기 전에는 재심이 안 된다는 것이 우리나라 사례입니다.”
ㅡ 김형태 변호사 INT
교도소 안에서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 12년째 복역 생활 중인 문호영(가
명) 씨는 여전히 자신이 무죄라 주장한다. 사촌동생의 여자친구를 강간하다 살해에
이른 혐의로 기소돼 징역 15년의 유죄를 선고받은 문 씨는 자신의 억울함을 증명하
기 위해 새로운 증거들을 모아 재심을 청구했다. 결과는 기각. 우리나라 법원의 입장
은 재심 개시에 대해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작년 4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복역한 사형수’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던 일본의 하카마
다 이와오(袴田巖ㆍ78) 씨가 석방되었다. 살인 및 방화 혐의로 기소된 그가 무고함
을 주장해 온 지 48년 만의 일이었다. 이유는 재심 개시 결정. DNA 검사 기술이 발전
하면서 새롭게 증명된 DNA 분석 결과가 재심의 문을 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법부는 기존 판결을 뒤집을 정도로 명백한 증명 능력을 지닌, 새로운 증
거가 나타나야만 재심을 열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편 우리와 비슷한 형법 체계를 지
닌 일본은 새롭게 발견된 증거 하나만으로 과거의 판결을 바꾸기 어렵더라도 그 밖
의 다른 증거들과 함께 따져봤을 때 충분히 판결을 뒤집을 수 있다면 재심 청구를 받
아줄 수 있다는 판례로 재심의 문을 넓혔다고 알려진다.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는 마지막 종착지라는 재심 제도의 현재와 나아갈 길을
[PD수첩]이 따라가 보았습니다.
111015 PD수첩 -만들어진 자백 뒤바뀐 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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