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古都를 기다리며
- 경주 남산 탑마을
11/23 다큐멘터리 3일 - 고도古都를 기다리며 - 경주 남산동 탑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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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기 전부터 있었고
늘 곁에 있으니
그냥 놔두고 살아왔을 뿐-
딱히 ‘지켜야 한다’는 마음도 없이
삶의 한 부분이자 자연의 한 조각으로
그렇게 오랜 이야기와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삶,
경주 남산 탑마을의 72시간이다.
■ 현재를 살면서도 ‘고도古都’를 기억하다
경주 남산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남산동 탑마을. 남산이 재조명되고 마을의 문화재인 탑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주말이면 관광객들로 번잡해지는 시골 마을이다. 주민 일부는 식당이나 펜션을 하면서 나름의 상업 활동을 하지만, 딱 배부른 만큼 거기까지. 마을 전체가 상업화되거나 본 모습이 달라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살기 좋을 만큼만 길을 닦고 생활에 편리한 만큼만 개조하되 나머지는 옛 것을 위한 자리로 남겨둔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가는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경주에서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옛 것, 옛 이야기들과 자연스럽게 이웃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수 천 년 서로를 요란스럽지 않게 지켜온 탑마을 사람들.
분주한 일상에 빠르게 지워버린 지난 날. 우리가 잊어버린 삶의 가치는 무엇일까. 개발과 편리만이 ‘발전’이라고 알며 살아온 우리에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이야기하는, 경주 남산 탑마을 사람들의 72시간을 들여다본다.
‘경주 마을 전체가 아직까지도
한 60년대 70년대 초 풍경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정겹게 느껴지는 게 있죠.
거기서 한 발짝만 벗어나면 전부 다 개발된 지역이기 때문에
오히려 개발이 안 된 이 마을이 역설적으로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 이근원 (51세) -
■ 천년의 세월과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법
경주 남산 탑마을엔 보물급 문화재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신라 21대 소지왕을 살린 편지가 나타나 서출지(書出池)라 이름 지어진 연못과 그 위에 반쯤 떠 있는 물 위의 정자 ‘이요당’, 스님의 염불 외는 소리가 경주 전체에 퍼져 ‘염불사’라 불리게 됐다는 전설의 ‘염불사지 삼층석탑’ 등….
그 가운데 대표적인 문화재는 마을 한 가운데 자리 잡은 보물 124호 ‘남산동 동서 삼층석탑’이다.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건축 양식이 다른 두 탑이 동서로 마주보고 있는 독특한 모양의 쌍탑.
탑은 오랜 세월 마을의 중심에서 지친 이들의 기도처가 되어 왔을 뿐 아니라 때로는 개구쟁이 시골 아이들의 놀이터로, 겨울이면 거센 바람을 막아주는 ‘효자 탑’으로, 그렇게 마을 사람들과 희노애락을 같이 해왔다. 지키거나 보존해야 될 ‘대상’이 아닌 일상의 한 부분이자 사람들의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신라 천년고도가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남을 수 있었던 건 이 같은 경주 사람들의 남다른 삶의 방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예전엔 서탑과 동탑 사이에 초가집이 있었어요
여름에 저녁 먹으면 높은데 올라간다고 탑에 올라가고….
바람이 들어오니까 시원하거든.
탑에서 놀고 자고 뭐 그리 했습니다’
-임혁우 _72세 _풍천 임씨 종친회장-
■ 마음을 닦는 산행 길, 경주 남산에 오르다
지난 200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경주 남산은 과거 신라인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불국토의 성지였다. 지금도 남산 곳곳엔 왕릉 13기, 불상 120체, 탑 99기,석등 22기 등 694점의 문화유적이 남아 있다. 그 중 남산 탑마을이 자리한 동남산 칠불암 코스는 남산의 유일한 국보 제312호 ‘칠불암 마애불상군’과 더불어 해돋이가 유명해 연일 등산객들이 끊이지 않는데...
동이 트기도 전인 깜깜한 새벽, 칠불암 주지 스님인 예진 스님과 새벽 예불을 드리러 가는 부부를 만났다. 약 1시간 여, 쉼 없이 펼쳐지는 계곡을 넘다 보면 숨이 깔딱깔딱 넘어간다는 ‘깔딱 고개’를 만나게 되는데, 이 고개를 넘어야 비로소 바위에 새겨진 ‘일곱 분의 부처’ 칠불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여정의 끝은 이곳이 아니다. 칠불암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깎아지른 절벽 낭떠러지에 이르면 경주를 한 눈에 담고 있는 탁 트인 절경에 이르게 된다. 그 끝엔 보물 199호 ‘신선암 마애보살 반가상’의 자비로운 미소가 기다리고 있는데... 숨이 턱 까지 차오른 끝에 만난 불상이 아름답듯 우리네 인생 역시 고비를 넘어야 진정한 보물을 만날 수 있다는 예진스님의 말처럼, 사람들은 오늘도 저마다의 희망을 만나기 위해 남산 칠불암으로 오른다.
‘생각에도 길이 있어요. 마음에도 길이 있어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느냐에 따라서 그 길이 달라지는 거예요.
이렇게 길을 다니면서 생각의 길을 봐야 되는 거예요.
나는 주로 어떤 생각들을 많이 하고 사는가?‘
- 예진 스님 -
■ 과거와 현재, 그 이상적인 공존을 꿈꾸는 어느 석공의 꿈
탑마을 은행나무 길을 따라 올라가면 마당 가득 돌을 쌓아두고 사는 집이 있다. 작업장으로 쓰이는 넓은 부지의 앞마당에 들어서자 실물 크기 그대로 복원된 신라 왕족의 연회지, 포석정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로 석공예 명장으로 수많은 문화재를 복원해 낸 윤만걸 씨의 집. 윤 명장은 1980년대부터 염불사지 삼층석탑, 용장사지 삼층석탑, 삼릉계 석불좌상 등 남산에서만 13개 문화재를 복원해 왔다. 특히 높은 산 중턱 어려운 지형에 있을 뿐 아니라 문화재 복원 처녀작이었던 보물 1188호 천룡사지 삼층석탑 복원은 지금도 잊지 못할 만큼 가슴 떨린다는 윤 명장.
그는 빠르고 편리한 현대적 방식 대신 전통 방식 그대로 문화재를 복원하는 작업 방식을 고집한다.옛 선조들이 그러했듯, 천년의 세월이 흘러도 그 후세에게 한 치의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오늘도 윤 명장은 전국 각지의 오래된 돌을 찾아 발품을 판다. 어떤 시대의 유적을 만나도 이질감이 없이, 제 모습에 가장 가깝게 복원해내기 위해서다.
‘우리가 하는 복원 작업은 한번 실수를 용납 할 수가 없습니다.
아주 중요하게 전해 내려오는 유물들이라
실수해서 훼손시킨다든지 오류를 범하면
후손들한테 우리 조상들의 훌륭한 지혜가 왜곡될 수 있거든요‘
- 윤만걸_(61세) -
11/23 다큐멘터리 3일 - 고도古都를 기다리며 - 경주 남산동 탑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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