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늦복 터졌네
전라북도 임실군 진뫼마을,
섬진강 강줄기를 따라 ‘서럽도록 아름답다’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찬란한 이곳에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다정한 두 고부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한 남자가 있다.
바로 박덕성 할머니(87)와 며느리 이은영(53) 씨,
그리고 아들인 섬진강 시인 김용택(67)씨다.
103014 인간극장 - 우리 엄마 늦복 터졌네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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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외동딸로 귀하게 자란 박덕성(87) 할머니.
하지만 열여덟에 시집와 육 남매를 낳고 자연스레 억척 아줌마가 되었다. 지나가던 걸인을 집에 앉혀 밥을 먹일 정도로
화통한 성격을 자랑하며, 온 동네 대소사를 맡아 챙길 만큼
펄펄 날던 박덕성 할머니도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지는 못했다.
고관절 괴사와, 관절염으로 계속 입·퇴원을 반복하다
더 이상은 통증을 이겨내지 못하는 몸 때문에
요양병원에 입원해 지내는 날이 많아졌고,
집으로 모셔오고 싶은 며느리와 아들의 바람과 달리
할머니의 몸은 점점 노쇠해져만 갔다.
몸도 마음도 점점 지쳐만 갔던 박덕성 할머니.
그런 박덕성 할머니에게 뜻밖에 노년의 ‘행복’이 찾아왔다!
그것은 바로 ‘바느질과 글짓기’.
시인인 아들의 예술적 재능이 어머니에서 온 것임을 증명하듯
한마디 한마디가 시와 같던 할머니의 얘기들은
투박하지만 진솔한 글로 정리되기 시작했고,
색이 곱고 화려한 수는 할머니의 생명력을 확인하는 증표가 되었다.
‘바느질과 글짓기’를 만난 후 180도 변한 박덕성 할머니의 표정.
자신도 모르게 생겼던 자식들과 세상에 대한 원망들이
드러나던 표정이 사라지고 언제나 싱글벙글한다.
그 모습을 보는 며느리 이은영 씨와 아들 김용택 씨의
얼굴에도 덩달아 웃음꽃이 폈다.
조금은 늦게, 하지만 어떤 때보다 풍성하게 찾아온 행복을
마음껏 누리며 노년의 시간을 보내는 박덕성 할머니와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나는 참 늦복 터졌다
전주의 한 요양병원.
대부분 침상에 누워서 무료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다른 할머니들과는 달리
흰 머리를 숙이고 바쁘게 손을 움직이며 수놓기에 몰두해 있는 박덕성(87) 할머니.
큰 며느리 이은영(53) 씨가 가져다 준
바늘과 실, 그리고 색이 고운 몇 개의 자투리 천은
오랜 병세로 우울했던 할머니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박덕성 할머니는 낮이나 밤이나 바느질감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농사를 지을 적부터 빛났던 부지런한 본성은
수를 놓을 때도 감춰지지 않는다.
며느리가 하루에 두 줄 씩, 심심풀이로 하시라며 가져다준 바느질감을
일주일도 안 되서 뚝딱 끝내버리는 박덕성 할머니.
“이것이 시집살이를 겁나게 시켜.”
말로는 며느리가 쉬지도 못하게 자꾸만 일감을 갖다 주며 시집살이시킨다고 하지만,
정작 본인이 이 생활에서 활력을 얻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열심히 완성한 수만 벌써 수십 점.
이제는 가족들이 모이는 날, 임실 고향 집에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날이면
누구에게나 자랑스럽게 걸어 놓고 전시하는
그런 멋진 작품이 되었다.
바느질하니 좋고, 해놓고 보니 예뻐서 좋고,
주위에서 예쁘다고 해주니 더 좋다는 박덕성 할머니.
알록달록 다채로운 색을 자랑하는 할머니의 수만큼이나
이 가을, 할머니의 마음도 풍성해진다.
# 선생님이 된 며느리
네모난 책상 앞.
인상 좋은 선생님과 머리가 하얀 학생이
연필과 공책을 붙들고 씨름하고 있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지요.”
“그러니까 잘 들었잖아요.”
며느리 은영 씨와 박덕성 할머니는 심심치 않게 선생과 학생으로 변한다.
본인의 자식을 가르치던 때처럼 하나를 가르치면
욕심이 나서 그다음 하나를 또 가르쳐 드리고 싶은 선생님 은영 씨.
욕심 많은 선생님 덕에 누구보다 바쁜 학생인 박덕성 할머니는
가끔은 하기 싫고 버거워 심술이 날 때도 있지만
벌써 한글을 다 깨우친 모범생 중의 모범생!
은영 씨와 박덕성 할머니는 매일 둘만의 작은 이야기회를 연다.
며느리가 던져준 주제에 곰곰이 과거를 되새겼다가
며느리에게 그땐 그랬노라, 저 땐 저랬노라
담담히 얘기하는 박덕성 할머니.
두 사람이 지나온 추억을 곱씹으며 나눈 이야기들은
기교나 세련미는 없지만 투박함 속에 진심이 드러나는 시들로 거듭났다.
가끔은 공부를 안 하겠다며 성을 내는 학생 때문에
골머리는 앓는 선생님이지만,
오직 아들 이름 세 글자 ‘김용택’밖엔 모르던 과거에서
이제는 손자, 손녀, 며느리 이름은 물론이고,
글자들을 척척 읽고 쓰시는 시어머니의 일취월장하는 글 솜씨에
내심 뿌듯한 미소를 짓는 며느리 이은영 씨다.
# 시인과 어머니
일찍이 남편이 떠나고 젊은 나이에 육 남매를 떠맡은 박덕성 할머니.
그런 할머니에게 장남 김용택(67)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집안의 대소사마다 별 내색 없이 가진 전부를 내 놓으며
어머니의 숨통을 틔워주던 효자 장남.
그 덕에 할머니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육 남매를 남부럽지 않게 키워냈다.
그런 효자 장남도 어머니의 속을 무던히도 썩이던 시절이 있었으니,
혼기를 꽉 채우고도 장가를 가지 못한 노총각 시절이 그랬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장가를 못 간다더라, 글을 쓰면 돈을 못 번다더라.’
동네사람들의 말에 할머니는 밤마다 몰래 방에서 울었다.
그때 마치 나비처럼 폭 날아와 노총각 아들 걱정을 잊게 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 소녀를 안겨준 사람이 바로
큰 며느리가 된 사람이 바로 이은영 씨다.
그렇게 결혼한 두 연분이 지금 할머니의 가장 큰 벗이자, 힘으로 남아있으니
할머니는 더 바랄 것이 없다.
이제는 할머니의 생신이 되면 모이는 자손들만 26명.
하나 틀어진 곳 없이 사이좋게 지내며, 훌륭하게 제 앞가림을 하고 사는 자식들을 보며
외로울 틈이 없다는 박덕성 할머니다.
평생 농사만 지으며 사셨지만, 삶이 예술이고 공부였다고 말하는 박덕성 할머니.
그리고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한글을 깨쳐 시를 쓰고,
침침한 눈으로 이불에 꽃잎을 흩뿌리듯 고운 수를 놓는 어머니를 보며
‘이 나이에 내가 뭘 못하겠는가.’라는 긍정의 에너지를 받고 있는 가족들.
어머니의 삶에 찾아온 늦복은 가족들 모두에게
더 큰 행복으로 키워지고 있다.
103014 인간극장 - 우리 엄마 늦복 터졌네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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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줄거리
박덕성(87) 할머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가족들의 화제는 단연 할머니의 자수(刺繡)다. 할머니를 위해 준비된 깜짝 전시회를 감상하며 끊임없는 질문세례가 이어진다. 기분 좋은 미소로 답하는 박덕성 할머니. 가족들이 모두 돌아간 다음 날 아침, 며느리 은영(53) 씨는 할머니가 처음 아팠던 시절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린다.
처음 듣는 며느리의 속 이야기에 마음이 찡한 박덕성 할머니. 담담한 손길로 며느리를 달랜다. 며칠 후, 볕이 좋은 가을날 함께 김용택(67) 시인의 강연을 들으러 간 은영 씨와 박덕성 할머니. 강연을 기다리는 모습이 사뭇 긴장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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