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6일 일요일

141026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634회 다시보기, 서프라이즈 피리부는 사나이 - 나폴레옹 사인 - 모나리자 실제모델 다빈치 동성 애인 살라이?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634회
Ⅰ. 아름다운 동행
Ⅱ. 황제의 유언
Ⅲ. 사라진 아이들

 

102614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1/2
영상링크▶ http://goo.gl/P0Z8ND

 

우리 주변의 작고 사소한 사건에서부터 세계적인 사건들을 재연형식으로

재구성하고 각종 소문에 대한 호기심과 진위를 소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Extreme Surprise >>

Ⅰ. 아름다운 동행
1989년, 하와이에서 열린 철인 3종 경기!
수많은 출전자들 중 가장 이슈가 된 선수는 휠체어에 앉은 남자와
그를 밀어주는 또 다른 남자였는데.. 그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Ⅱ. 황제의 유언
1821년, 죽음을 앞둔 나폴레옹!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나누어주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는데..
그의 유언에 남겨진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Ⅲ. 사라진 아이들
그림 형제의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
피리로 아이들을 유인하여 사라져 버렸다는 내용의 이 동화가
독일의 하멜른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었다는데..!

<< Surprise Secret >>

이야기 #1. 모나리자의 비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이 그림 속 모델이 누구인가에 대한 진실은 오랫동안 수수께끼로 남아있었는데..
<모나리자> 속 모델은 과연 누구일까?

<< 언빌리버블 스토리 >>

이야기 #1. 이상한 신발
딸을 위해 준비한 선물, 그리고 이 선물 때문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0월 26일 방송된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나폴레옹의 사망과 관련된 미스터리를 전했습니다.

19세기 초 전 유럽을 제패한 나폴레옹은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후 세이트 헬레나 섬에 유배됐습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1821년 위암으로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1961년 스웨덴 의사이자 독극물 학자인 스텐 퍼슈홋 박사는 나폴레옹이 독살 당했다는 주장을 제기했습니다.

나폴레옹이 독살됐다는 증거 중 하나로 스텐 퍼슈홋 박사는 그의 유언을 들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죽기 전 자신이 죽으면 머리카락을 잘라 가족과 친구들에게 나눠 달라고 부탁했는데, 이는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해당 머리카락에서는 실제로 상당한 양의 비소가 검출됐습니다.

또 당시 투병하던 나폴레옹의 증상은 비소 중독 증상과 일치했습니다. 비소는 외부에서 오염된 것이 아니라 몸 안에서 머리카락으로 옮겨간 것으로 누군가 지속적으로 비소를 먹였다는 것을 추측케 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나폴레옹을 죽이려 했을까. 스텐 허슈홋 박사는 나폴레옹의 심복 찰리 트리스탄 몬트론 장군을 지목했다. 몬트론 장군은 모든 사람들이 외면한 순간에도 나폴레옹 곁을 지키며 나폴레옹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몬트론 장군과 함께 유배지로 온 몬트론 장군 아내와 불륜을 저질렀고, 몬트론 장군은 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심지어 1년 후 몬트론 장군 아내는 나폴레옹의 아이라 추측되는 딸까지 낳았습니다. 이에 몬트론 장군은 나폴레옹 복수를 계획, 그에게 비소를 먹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 군의관들이 부검한 결과 나폴레옹의 사인은 위암으로 밝혀졌고 나폴레옹의 할아버지, 아버지, 세 명의 동생도 위암으로 사망한 가족력이 있었기에 나폴레옹 사망 미스터리를 수 십년간 치열한 공방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2000년 놀라운 내용을 담은 한 통의 편지가 발견됐습니다.

몬트론이 아내 알비느에게 보낸 편지였는데, 몬트론 장군은 편지에 "하루 빨리 사랑하는 당신와 아이의 곁으로 가기 위해 난 나폴레옹을 병자로 만들 것이다"는 내용을 적었던 것. 이는 나폴레옹 독살설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결정적 증거가 됐습니다.

-  나폴레옹 사인

'서프라이즈' 그림 형제 '피리부는 사나이'에 대해 다뤘습니다.

26일 오전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이하 서프라이즈)에서는 그림형제의 동화 '피리부는 사나이'가 독일 하멜른의 130명 어린이가 실종됐던 실화에 바탕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담겻습니다.

1814년 출판된 '피리부는 사나이'는 하멜른 시의 쮜떼들을 쫓아준 사나이의 이야기로 시민들이 사나이에게 약속된 돈을 지불하지 않자 아이들을 유인해 사라져버렸다는 스토리로 구성돼 있습니다.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지만 수많은 아이들을 유인해 사라졌다는 충격적인 결말을 통해 무서운 동화로 인식돼 왔습니다.

그러나 2008년 일본에서 '피리부는 사나이'가 실화에 근거헀다는 주장이 제기됏다. 이를 주장한 아베 긴야는 1971년 독일 괴팅겐 주립 문서 보관소의 독일 하멜른 시 역사 서적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6월 26일 하멜른 시내에서 130명의 어린이들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문구로 하멜른 마르크트 교회 유리벽에 쓰인 문구의 필사본이었습니다.



이를 보고 '피리부는 사나이'를 떠올린 아베 긴야는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 1384년에 쓰인 하멜른 교회의 기도문 '파시오날레'에 적힌 '1284년 6월 26일 130명의 어린이들이 하늘의 뜻에 다라 사라졌다'와 14세기 하멜른 지역의 수도사 생활사 '황금의 고리' 필사본에 적힌 '1284년 6월 26일 하멜른의 어린이 130명이 은피리를 부는 남자를 따라가다 모습을 감췄다'는 글을 발견했습니다.

아베 긴야는 이 사실을 바탕으로 '피리부는 사나이'가 만들어졌다고 확신하고 조사한 결과 극심한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던 과부, 미혼모 자녀 130명이 실종됐다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1260년 하멜른의 지배권을 놓고 발생한 제데뮌데 전투로 인해 남편을 잃은 여자와 미혼모가 급격히 증가했고, 남편 없이 시민권을 받지 못했던 이들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배가 고파 죽어가는 아이들이 늘어났고, 아베 긴야는 사라진 130명이 남편 잃은 여자와 미혼모의 자녀라고 설명했습니다.

6월 26일로 정확한 시기가 게재된 것에 대해 아베 긴야는 그 날이 카톨릭 바오로와 요한의 날로 죽은 아이들이 다음 생애는 축제같은 삶을 살기 바라는 마음을 담았거나, 하멜른 하층민의 삶을 힘들게 만든 카톨릭 주교에 대한 비팜을 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100년 뒤 등장한 '피리부는 사나이'는 역사적 사실이 후대에 전해지며 동화로까지 탄생하게 됐다. 그러나 7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그 사실 여부는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 서프라이즈 피리부는 사나이

10월 26일 방송된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미소로 웃는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모나리자 실제 모델에 대한 궁금증을 전했습니다.

이탈리아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는 누군가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눈동자, 입가에 걸린 미소까지 세계 최고의 명화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하지만 모나리자 실제 모델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은 채 오랫동안 베일에 감춰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0년, 모나리자 실제 모델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제자이자 동성연인 살라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탈리아 문화유산 위원회 위원장은 그 근거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또 다른 그림 세례 요한을 언급했습니다.

1516년 완성된 세례 요한 그림은 예수의 탄생을 예언한 세례 요한을 그린 그림이다. 오른손 검지로 하늘을 가리킨 채 신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세례 요한을 그릴 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제자 살라이를 모델로 세웠습니다. 

세례 요한의 얼굴은 바로 살라이의 얼굴이었고 이는 모나리자의 얼굴과 놀라울 만큼 일치했던 것.



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살라이에게 모나리자를 남겼다. 당시 화가들은 왕이나 귀족의 그림을 완성한 후 의뢰인에게 바쳤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 누구에게도 모나리자를 주지 않았고 사망할 때까지 모나리자를 간직했습니다.

그리고 죽기 직전 살라이에게 모나리자를 주겠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렇다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왜 살라이를 모델로 세운 다른 그림과 달리 모나리자만 여자로 그린 것일까. 이는 살라이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살라이가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동성 연인이었기 때문.

1490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소작농의 아들 살라이를 보게 됐습니다.

그는 금발의 미소년이었던 살라이의 아름다움에 반했고, 다른 그림은 배제한 채 주로 살라이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제자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감정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동성애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당시 이탈리아는 동성애자를 사형에 처할 정도로 동성애에 엄격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하지만 명문가의 자제가 석방되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운좋게 석방됐고, 세간의 시선을 피해 사랑하는 사람을 감추기 위해 여자로 그린 것이었습니다.

제자 살라이의 얼굴과 완벽하게 일치한 모니리자. 정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제자 살라이를 모나리자로 표현한 것일까. 모나리자는 그 비밀을 간직한 채 지금도 신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 모나리자 실제모델 다빈치 동성 애인 살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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