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TV 서프라이즈 637회
Ⅰ. 영웅의 죽음
Ⅱ. 다이애나의 비밀 테이프
Ⅲ. 대통령의 비밀
111614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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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treme Surprise >>
Ⅰ. 영웅의 죽음
1961년, 미국. 폭풍우에 휘말려 침몰한 호화 요트 ‘블루벨 호’.
유일한 생존자이자 ‘블루벨 호’의 선장, 줄리앙 하비.
그는 구조된 지 3일 째 되던 날, 자살하고 마는데!
과연 ‘블루벨 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Ⅱ. 다이애나의 비밀 테이프
2004년, 미국.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의 비밀 테이프가 공개되는데..
이 테이프가 공개되자 전 세계는 큰 충격에 휩싸인다.
과연 다이애나의 비밀 테이프에 담긴 내용은?
Ⅲ. 대통령의 비밀
1987년, 오스트리아! 10년간 UN사무총장을 역임했던 쿠르트 발트하임!
은퇴 후 오스트리아로 돌아온 그는 오스트리아의 제 6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는데..
그 후로 국제적인 외톨이가 된 오스트리아. 그 이유는 무엇일까?
<< Surprise Secret >>
이야기 #1. 천지창조의 비화 祕話
미켈란젤로의 명작, <천지창조>!
그는 <천지창조>로 당대 최고의 예술가로 우뚝 설 수 있었는데..
조각가였던 그가 벽화를 그리게 된 사연은 무엇이었을까?
<< 언빌리버블 스토리 >>
이야기 #1. 내 아내의 비밀
아내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남편. 과연 아내가 가진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나치 출신? 16일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대통령의 비밀 편이 전파를 탔습니다. 1987년, 오스트리아! 10년간 UN사무총장을 역임했던 쿠르트 발트하임. 은퇴 후 오스트리아로 돌아온 그는 오스트리아의 제 6대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그 후로 국제적인 외톨이가 된 오스트리아. 그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으로부터 입국 거부 당핸 쿠르트 발트하임은 1972년부터 1981년까지 UN을 이끈 사무총장이었다. 그는 UN 역사상 가장 실력 있는 사무총장으로 인정받으며 화려하게 은퇴 후, 고국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1986년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1985년 대통령 선거 1년 전. 발트하임이 과거 나치 활동을 했단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 증거로 나치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 등이 제시됐다. 결국 발트하임의 악랄함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발트하임은 고국으로 돌아와 평범한 대학생활을 지난 후 오스트리아 대통령 후보까지 오르게 된 것.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오스트리아의 한 주간지 편집장은 기사를 써야할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는 오스트리아가 국제사회에서 받게 될 비난르 염려해 기사 쓰기를 망설였습니다. 결국 그는 오스트리아의 주간지 프로필을 통해 발트하임이 나치 출신이라는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발트하임은 오스트리아의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종전 후 나치 청산에 소극적이었던 오스트리아는 자신들은 피해자라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발트하임은 "전쟁이 발발했을 때 난 어렸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군인이 됐다. 원치 않았지만 가족을 위해 임무를 다해야만 했다"고 감정에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 당선 후에도 페르소나 논 그라타, 즉 외교적 기피 인물로 여겨졌습니다. 그 결과 미국 입국까지 거부당했습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입국 금지 당한 최초의 인물이라는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천지창조에 숨겨진 비밀은? 16일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천지창조의 비화 편이 전파를 탔습니다. 미켈란젤로의 명작 '천지창조'. 그는 '천지창조'로 당대 최고의 예술가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조각가였던 그가 벽화를 그리게 된 사연은 무엇이었을까?
당시 미켈란젤로를 견제했던 도나토 브라만테. 그는 미켈란젤로를 나락에 떨어트리기 위해 시스티나 교회 천장화를 미켈란젤로가 그리게 했습니다.
당시까지 조각 외에 천장화는 단 한 번도 그려본 적 없었던 미켈란젤로. 그는 4년 동안 천장화를 그리며 관절염, 시력장애에 시달렸습니다. 공개된 시스티나 교회 천장화는 실로 놀라웠습니다.
천장화를 본 사람들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교황 율리우스 2세 역시 미켈란젤로의 공을 치하했습니다. 창세기 인물들을 천장에 고스란히 담은 천지창조는 창세기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유럽을 대표하는 최고의 예술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고(故) 다이애나 사생활 테이프, 다시 봐도 충격적인 내용입니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비밀 테이프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미국 NBC 방송사에서 90분 분량의 특집 프로그램으로 방송한 이 비밀 테이프는 찰스 왕세자와 결혼생활 중이던 1992년~1993년 촬영된 것으로 연설법을 가르친 교사 피터 세틀린이 촬영한 것이었습니다.
피터 세틀린은 다이애나 사망 7년 후 이 테이프를 공개했고 해당 테이프에는 다이애나 비의 충격적인 사생활이 담겨 있었습니다.
다이애나는 영상에서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찰스와 결혼한 일이다. 내 결혼식은 최악이었다. 그 날 난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한 마리의 양 같았다"며 "그리고 그런 나를 지켜보는 한 여자가 있었다. 카밀라 파커 볼스라는 여자였다"고 토로했습니다.
다이애나는 카밀라와의 관계를 정리하지 않은 찰스 왕세자 때문에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다이애나는 우울증에 임신한 상태에서 계단 아래로 몸을 던지는가 하면 폭식과 거식을 반복했고 5차례에 걸쳐 자살 시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왕세자비 신분이었던 다이애나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감춰야 했습니다.
그런 다이애나 곁에서 그녀를 다독인 사람은 바로 왕실 경호원 배리 매너키였습니다. 다이애나를 24시간 경호한 배리 매너키는 다이애나의 불행한 결혼생활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그녀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다이애나는 영상에서 "24살, 25살이었을 때 궁전에서 일했던 어떤 사람과 깊은 사랑에 빠졌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크게 의지했던 사람이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다이애나와 배리의 관계는 왕실에 발각됐고 배리는 외교부 경호원으로 좌천됐습니다.
그로부터 8개월 후 다이애나는 찰스 왕세자와 칸 영화제에 참석, 배리의 사망 소식을 접했습니다. 1987년 5월 런던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가던 배리는 맞은 편에서 달려오던 승용차와 충돌,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배리의 사망 소식을 들은 다이애나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취재진들에게 둘러싸여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을 감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다이애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사람에 대한 이상한 꿈을 꾸기도 했다"며 "그래서 무덤에 꽃을 꽂으려고 갔는데, 내가 그 사람 무덤에 찾아간 이후로 내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간 것을 그가 아는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다이애나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테이프를 자신이 죽기 전까지 공개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4년 후인 1997년 다이애나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망 7년 후 테이프가 공개되자 전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왕비처럼 보였던 다이애나가 마음의 고통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불행했던 삶을 안타까워 하며 그녀를 추모하고 있습니다. 영국인들의 영원한 왕세자비 다이애나는 진정한 사랑을 찾았지만 그 사랑마저 그녀를 구원해 주진 못했습니다.
111614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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