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7일 화요일

151116 MBC 다큐 스페셜 다시보기, 나의 집은 어디인가요

3, 40년 넘게 미국에서 살아온 입양인이 시민권 없다는 이유로 한국에 추방되었다.

양부모들이 국적취득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적취득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입양인만 약 16,000명. 이들은 과연 어떻게 살고 있을까. 다큐스페셜에서는 추방될 위기에 처해 있는 입양인, 그리고 추방되어 한국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입양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책임은 없는지 돌아본다.

 

111615 MBC 다큐 스페셜 - 나의 집은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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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보낸 아이, 추방의 벼랑 앞에 서다

지난 10월 20일, 미국 오레곤주에서 한인 입양인 아담 크랩서의 추방재판이 열렸다. 미국정부는 20년 전 이미 복역을 마친 그의 범죄기록을 문제 삼았다. 아담의 나이 17살 때의 기록이었다. 그는 왜 어린 나이에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었을까. 아담 크랩서(한국 이름 신성혁 혹은 신송혁)는 1979년 3월 8일 두 살 터울의 누나(한국 이름 신성애 혹은 신송아)와 함께 기독교 집안의 라이트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따뜻하고 유복한 가정을 꿈꿨던 남매는 지하실로 끌려 들어가 채찍질을 당하는 등 폭력에 시달렸다. 같이 간 누나는 그 집 맏아들에게 성적으로 학대당하기도 했다.

어린아이들에게 매일 같이 폭력을 행하던 라이트 가족은 돌연 아담과 누나를 파양시켰다. 아담과 누나는 위탁가정에서 지내다 1년 후 각자 다른 집으로 재입양을 가면서 헤어지게 됐다. 누나가 눈에 보이지만 않아도 울었던 아담을 기다리고 있는 건 더 가혹한 학대였다. 아담을 비롯해 5명의 아이를 입양한 크랩서 부부는 못을 박는 기계를 아이에게 쐈고, 토사물을 먹게 시켰으며, 화상을 입히고 목을 졸랐다. 지옥 같은 5년이 흐르고 이웃 주민의 신고로 체포된 크랩서 부부는 재판을 받게 되었지만, 아담은 학대받았다는 사실을 증언하지 않으면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90일 만에 풀려난 크랩서 부부는 아담을 거리로 내쫓았다. 아담은 길거리를 헤맸다. 때로는 쓰레기통에 있는 치즈버거도 주워 먹어야 했다. 노숙자들 사이에서도 가장 어린 동양인이었던 아담. 그는 추위와 배고픔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게 있었다. 바로 입양 당시 한국에서 가져왔던 성경, 고무신, 그리고 인형이었다. 어느 날 그는 그 물건들을 되찾기 위해 크랩서 부부 집에 몰래 들어갔다. 하지만 크랩서의 신고로 주택침입죄를 선고 받고 감옥에 가야만 했다.

그 사건으로 20년이 지난 지금 아담은 추방 재판대 앞에 서게 됐다. 약 40년, 모진 학대를 견디며 살아남은 그였다. 아무도 실현시켜 주지 않은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검정고시로 공부를 마쳤고 이발사가 되어 가정을 꾸려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었다. 입양도, 국가도 그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저 그는 지독히도 불행한 사람일 뿐이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을까.

제 의지와 상관없이 미국으로 입양되어 미국인으로 살아가며 온갖 고초를 겪고 견뎠는데 결국 불법 체류자로 분류돼 추방당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입니다. 미국은 이곳에서 더 나은 삶을 우리(입양인)에게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을 지켜주세요. 

- 아담 인터뷰 中

 


▶ 잃어버린 제 31년의 삶을 돌려주세요

 

2009년 11월 4일, 찬바람이 부는 한겨울,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만 입은 한 남자가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이름 한호규, 그의 나이 38세 때의 일이다. 미아로 등록돼 8살에 입양을 갔던 몬티는 두 번의 파양을 거듭하며 학대로 얼룩진 삶을 살았다. 양부모는 몬티를 발가벗겨 나무에 묶어놓고 개에게 쫓기게 했고, 이유 없이 발가락을 잡고 부러뜨렸으며 성적 학대도 일삼았다. 성인이 된 몬티는 트럭 운전을 하며 일상을 꾸려나갔다. 그러다 상관의 지시대로 물건을 운반하던 그는 트럭에서 마약이 발견됐단 이유로 감옥으로 끌려갔고 곧바로 추방재판에 회부되었다.

몬티의 추방 재판을 맡은 미국의 판사는 ‘당신의 양부모가 당신의 시민권을 신청할 때 제출할 서류 하나가 빠졌다. 서류 상의 문제로 당신은 미국 시민이 아니다. 이 나라를 떠나라.’ 며 그를 추방했다. 완전한 미국 시민이 되기 위해 군대에 자원, 걸프전까지 다녀온 몬티에겐 잔인한 처사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몬티에게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가 버려진 아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몬티는 평생을 가족에게 버림받았단 지워지지 않는 상처 속에 살아왔지만, 그의 어머니는 잃어버린 그가 한국 어딘가에서 살아있을 줄로만 알고 날마다 그를 찾아 헤맸다. 몬티의 어머니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년 그의 생일을 축하하며 식탁 위에 몬티 몫의 밥공기 하나를 더 올려놓았을 만큼 그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한국정부, 미국정부, 입양기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왜 미아가 되었던 것인지, 입양 가게 될 가정이 어떤 곳인지 제대로 확인하고 보냈어야 해요. 그리고 국적을 취득했는지 확인했어야죠. 입양 절차를 확실히 했었다면 이런 문제는 생기지 않았을 거예요. 잃어버린 제 31년 삶을 되돌려주세요! 최소한 당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세요!     

- 몬티 인터뷰 中

몬티가 한국에 돌아온 지 7년. 더 이상 그에게 이사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1년마다 고시원과 게스트하우스를 오가며 혼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공장, 냉동장비 공장, 각종 레스토랑 등 안 해 본 일이 없다는 몬티는 언어소통이 어려워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미국에서 산 31년 동안 미국인이 아니었듯 몬티는 한국에서도 여전히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 미국에서 평생을 살았지만, 미국인이 아닌 사람

 

엘라 퍼키스는 한국전쟁 이후 미국으로 보내진 혼혈 입양인이다. 1955년생, 한국이름 김양애. 엘라는 어린 시절부터 양부에게 성적으로 학대당했다. 그녀의 양부는 엘라의 딸에게까지 성추행을 시도했으며 그에 대한 상처로 엘라와 그녀의 딸은 현재 멀어지고 말았다. 최근 엘라의 유일한 가족인 남편마저 사망했는데 그 과정에서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알게 됐다. 60년 평생을 미국에서 살아온 그녀가 미국 시민이 아니라는 것이다. 엘라의 양부모 또한 국적취득 문제를 방치했다.

미국에서 시민권이 없는 사람은 투표를 할 수도 없고, 미국여권을 만들 수 없어 외국에 나갈 수도 없다. 엘라에게 그보다 더 큰 충격은 평생 미국 밖을 떠나 본 적 없는 그녀가 미국 시민이 아닌 외국인라는 사실이었다. 엘라는 앞으로 단순교통법규 위반으로도 언제든 추방당할 가능성이 있다. 그녀는 매일 이 문제에 대해 염려하고 걱정하며 살아가야 한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인이 아니라며 버려졌고 미국에서 60년 넘게 살았지만, 미국인도 아닌 그녀가 살아갈 국가란 어디인가.

저의 끔찍한 삶은 모두 양부모 탓이에요. 엉망인 삶을 살게 한 양부모들에게 너무 화가 납니다. 전 지금 구름, 돌멩이 같은 거예요. 아무도 아닌 겁니다. 전 존재하지 않는 거예요. 하지만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잖아요.  제 삶의 마지막 목표는 언젠가 한국에 가보는 것이었어요. 남편이 은퇴하면 꼭 같이 가자는 말을 하곤 했었죠. 그런데 시민권이 없어 여권조차 만들 수 없게 된 지금, 전 어디로 가야 하는 건가요.
                                                                                                          - 엘라 인터뷰 中

▶ We are Adam Crapser! (우리는 아담 크랩서입니다!)

 

2015년 정부가 파악한 통계에 따르면 1950년대부터 미국으로 입양을 간 입양인의 수는 약 111,000명이다. 이 중, 미국 시민권 취득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사람은 최소 15,568명이다. 아담과 엘라 같은 입양인이 얼마나 더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지난 2000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아동시민권법(Child Citizenship Act 2000)에 의해 미국으로 입양을 간 아이들에게는 자동으로 시민권이 주어진다.

그러나 그 법은 아담처럼 2000년 당시 만 18세 이상인 입양인들의 국적취득 여부까지는 책임져주지 않는다. 한국 입양특례법에 의하면, 입양기관은 입양된 아동의 국적취득 여부를 확인하고 정부부처에 보고해야 했다. 그러나 양부모와 연락이 단절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입양기관은 의무를 지키지 않았고 정부는 이를 감시하지 않았다. 버려진 아이들을 그저 해외로 보내기에만 급급했던 시절, 행복한 가정에 입양되지 못했던, 그래서 온전히 미국 시민이 될 수 없었던 수많은 입양인들. 그들의 인생은 누가 보상해줄 수 있을까.

우린 노예인 거예요.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미국 시민권이 없고 미국 시민으로서 권리가 없다면 노예와 다름없는 거죠. 노예는 그 용도에 따라오게 되는 거잖아요. 가족을 구성하기 위해 우리는 여기에 왔어요. 그러나 우리의 동의는 없었어요. 우리에게 묻지도 않았고요. 

- 호프 인터뷰 中

한국이 전쟁 통에 그런 건, 워낙 힘든 때였으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후에는 정부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아이를 입양 보냈다는 거죠. 그러니 그 아이들이 입양되어 입양부모에게 살해당하기도 하고, 부모의 방치로 시민권조차 받지 못해 다시 한국으로 추방당하기도 하는 거죠.

- 몬티 인터뷰 中

모두가 방치했고 모두에게 버림받은 입양인의 상처받은 삶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물을 수 있을까? <mbc다큐스페셜> ‘나의 집은 어디인가요’에서 입양인에 대해 우리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책임은 없는지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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