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Mr. 욤비 2
‘욤비’ 씨를 기억하나요?
작년 2월, 콩고민주공화국 내의 ‘키토나’ 왕족에서
한국난민으로 살아가는 욤비 씨 가족이 방영되었다.
111014 인간극장 - 굿모닝, Mr. 욤비 2 1부 #1
영상링크▶ http://goo.gl/qk9B3M
6년간의 불법체류 끝에 난민 인정을 받고
정글에 숨어 살던 가족과
한국에서 눈물의 재회를 한 욤비(48) 씨.
어렵게 난민비자를 취득했으나,
흑인 난민 가족의 한국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10년 간 경기도 일대를 돌며 공장과 잡무를
전전하고, 살던 집의 보증금을 떼인 적도 있다.
방송 이후, 시청자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 덕에
욤비 씨 가족에겐 기적이 일어났다.
교수가 된 욤비 씨와 공주님의 탄생으로 다시 찾아온
2014년 11월 굿모닝 미스터 욤비 제 2탄!
한국의 어엿한 ‘인권 교수’이자
어느덧 일곱 식구의 가장이 된 욤비 씨와
그 가족의 광주 정착기가 지금부터 시작된다.
# 돌아온 미스터 욤비, 광주로 가다
2013년 2월 방송된 ‘굿모닝 미스터 욤비’ 편을 기억하는가?
콩고 민주공화국 내의 수많은 왕국 중 하나인 ‘키토나’의 왕자였던 욤비(48) 씨,
그의 가족이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방영되었다.
이후 욤비 씨 가족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인천을 종횡무진하던 욤비 씨 가족이 광주로 정착했다는 소식!
방송 이후 광주소재의 한 대학에서 교수제의를 받은 욤비 씨가 강단에 서게 됐다.
그는 대학에서 외국어가 아닌, 난민과 인권, NGO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공장과 잡일에만 전전해야 했던 지난 10년과는 180도로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는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어엿한 한국사회의 구성원이 된 것!
스승으로서 훌륭한 제자를 양성해야 하는 묵직한 의무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욤비 씨.
도움을 받던 난민이 아닌 한국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비로소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좋은 소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올 10월, 욤비 씨를 찾아온 스페셜한 손님!
바로 다섯 째 가엘이 태어난 것. 다산을 하는 아프리카의 전통답게 현재 다섯 명 자녀의
아버지가 된 욤비 씬 일곱 식구의 가장으로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그가 광주광역시에서 펼쳐 보이는 ‘난민의 한국살이 제2막은 이렇게 벅차게 시작됐다.
“아빠가 가라는 길로 가서 성공을 해도 항상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을 것 같아요.후회해도 내가 원하는 길을 책임지고 가고 싶어요.” - 라비(16)
한때 진로문제로 씨름하던 부자관계가 2차 갈등에 돌입했다.축구선수에서 이제는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아들 라비(16).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콩고인 라비는 방송사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 나름 유명인. 그러나 욤비(48) 씬 그런 라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방송촬영이 늘어날수록 학교수업이 빠지는 일이 점점 늘어나 자연히 공부에 소홀해지기 때문이다. 무지로 인해 겪은 고국의 내전... 10년간 눈물겨운 타향살이를 하면서도 수천 권의 책을읽은 그에겐 공부만이 유일한 살길이다.
공부를 해서 고국 콩고로 돌아가 나라를 변화시킬 생각을 갖고 있는 아빠와는 달리 열다섯의 아들은 어느새 스스로 진로를 스스로 계획하는 나이가 됐다.어느 날, 방송촬영을 위해 서울로 간 라비가 늦은 밤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욤비 씨, 결국 방송 중지 경고를 내린다.
욤비 씨가 라비의 연예계 활동을 반대하는 것은 단지 학업 때문만은 아니다.이전 축구선수의 길을 접어야 했던 이유도 바로 난민 이라는 처지 때문.난민신분으로서는 한국에서 축구선수나 연예인으로서의 미래를 약속할 수 없다. 한국 국적을 취득해야만 가능한데, 훗날 콩고로 돌아가야 하는 사명을 가진 욤비 씨에겐귀화나 이중 국적이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욤비 씨에게 가장 큰 걱정은 무엇보다 두 딸들.한국에서 태어난 두 살 난 아스트리드와 갓 태어난 가엘은, 아직 한국 법상 국적이 없다.
“우리 아이들 생각하면 국적을 바꾸고 싶어요. 하지만 내겐 콩고에 가족들이 아직 남아있어요. 그들 생각하면 바꿀 수 없어요. 하지만 우리들 아이들도 잘 살아야 해요. 고집부리는 내 모습에 아이들이 아빠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까 걱정이에요.” - 욤비(48) 씨
아이들의 한국생활도 어느덧 6년, 흑인에 대한 편견과 따가운 시선으로 적응이 힘들었던 아이들은 이제 모국어보다 한국말이 편해지고, 콩고음식보다 한국음식에 길들여졌다.시간이 지날수록 고국의 그리움이 짙어지는 욤비 씨 부부와는 달리, 더 빨리 한국인이 돼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욤비 씨의 마음 한구석은 무겁다. 아이들이 자신의 나라 콩고를 잊을까, 가고 싶은 나라가 더 이상 아닐까 걱정이 되는데..
“아빠만 콩고를 생각하는 것 아니고 우리 모두 다 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드리고 싶어요.” - 라비(16)
욤비 씨 가족의 밥상머리 교육은 언제나 콩고의 이야기로 시작되고 끝을 맺는다.
한국문화와 음식에 익숙해졌지만 욤비 씨의 걱정과는 달리 아이들에게도 콩고는
여전히 그립고 돌아가고 싶은 곳이다.
한국에서 아버지가 홀로 난민의 지위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6년 동안
라비(16), 조나단(15), 파트리샤(14) 삼남매는 엄마 넬리와 함께 콩고의 정글에서
숨어 살았었다. 비록 조국을 떠나와 살지만, 삼남매는 아프리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며 아빠와 함께 고국의 미래를 걱정할 만큼 부쩍 자랐다.
욤비 씨는 인간극장에 그리고 한국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는다.
이름도 생소한 먼 나라에서 온 흑인 난민을 아무 대가없이 도와주었던 고마운
한국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다고. 한국은 자신의 두 번째 나라라고.
“방송 이후 한국 사람들이 더 많이 화를 내 주었어요.
마치 자신들의 잘못인 것처럼 미안해하고. 걱정도 많이 해주고....
우리 나중에 콩고 꼭 같이 가요. 약속해요. 고맙습니다.”
그리운 나라 콩고로 돌아가 고국에서 사는 그 순간까지,
콩고 난민 욤비 씨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111014 인간극장 - 굿모닝, Mr. 욤비 2 1부 #1
영상링크▶ http://goo.gl/qk9B3M
1부 줄거리(2014/11/10)
2013년 2월, 콩고에서 온 난민가족 욤비 씨가 방송에 소개되었다.
1년 9개월이 지난 지금 욤비 씨 가족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제 2탄, 욤비 씨 교수 되다! 광주소재의 한 대학교수가 된 욤비 씨.
때문에 가족은 인천에서 광주로 대이동을 하게 된다.
컴컴한 인천집에서 넓은 아파트로 이사간 가족은 광주에서 두번째 한국살이가 시작됐다.
광주가 가족에게 준 선물은 이뿐만이다. 다섯 번 째 아이 딸 '가엘'이 태어난 것!
대학에서 학생들 가르치랴, 출산한 아내를 위해 영양식 만드랴, 아이들 챙기랴
욤비 씨의 하루가 바쁘다. 두살배기 아스트리드 목욕시키는 날,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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