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회 특집>카자흐스탄 0.6%의 기적
-고려인의 도시 알마티
다큐멘터리 3일 400회 특집 - 카자흐스탄 0.6%의 기적 - 고려인의 도시 알마티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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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많은 작품을 해 온 안재욱 씨가 내레이션을 맡아 고려인의 0.6%의 기적을 특유의 부드럽고 힘 있는 목소리로 들려줄 예정이다.
서울에서 4277km
이국땅에서 만난 우리와 똑같은 얼굴
황무지에 뿌리 내리고 꽃을 피운
카자흐스탄 고려인의 강인한 생명력
0.6%에 불과한 인구로 기적을 일궈낸
‘또 다른 우리’와 함께 한 3일이다.
■ 황무지에 뿌리내린 고려인들을 만나다
비행기로 4277km 날아가야 갈 수 있는 먼 나라,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이곳에 우리말을 쓰고 삼시세끼 김치를 먹는 이들이 12만 명 살고 있다. 카레이스키, 고려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19세기 말부터 살 길을 찾아 국경을 넘어 러시아 동쪽 끝 연해주에서 농사를 지었고, 독립운동의 기반을 마련했던 이들의 후손이다. 1937년 화물 열차에 실려 강제 이주 당한 지 78년, 카자흐스탄 인구의 0.6%에 불과한 고려인은 경제와 학문 비롯한 사회 전반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현지인들은 고려인을 일컬어 ‘부자’ ‘근면 성실한 사람들’ ‘가족끼리 화목한 민족’이라고 한다. 카자흐스탄의 구 수도 알마티 시에는 전체 고려인의 1/5이 거주하며 그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황무지에서 맨손으로 0.6%의 기적을 이룬 고려인의 도시 알마티에서 함께 한 3일이다.
고려인들은 파, 쌀과 같은 작물을 길러 재배했고,
아주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모든 일들이 고려인들의 덕분입니다.
그래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조차도
고려인은 카자흐스탄을 구성하는 4대 민족 중 하나로 치켜세웁니다.
그들은 고려인의 근면성을 아주 높게 평가합니다.
-소게르만 / 79세, 장교클럽 회장
■ 이방인에서 경제의 중추로, 고려인 0.6%의 기적
알마티 한복판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노랫소리가 들리는 곳은 고려문화중앙. 1989년 우리말과 문화를 이어가기위해 고려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곳이다. 합창단과 무용단, 한글학교를 포함해 20개의 동아리가 활동하고 있다.
이곳에서 통역사로 활동하는 김옥자 씨는 사할린에서 태어난 고려인 2세다. 건축가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사할린에서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카자흐스탄으로 왔다. 그녀는 카자흐스탄 내 10대 기업에 손꼽는 건축회사에서 41년간 근무하며 재정회계이사 자리까지 올랐다. 남자들이 대다수인 건설현장에서 여자의 몸으로 버텨낸 결과였다. 정년퇴직했지만 지금도 한국 기업들과 계약이 있을 때면 회사를 방문해 통역을 맡고 있다.
이 회사의 회장인 신 브로니슬라브 씨도 고려인 4세다. 말단사원부터 시작해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고려인의 근면성실함이 큰 힘이 되었다. 카자흐스탄 최대 은행의 은행장도 고려인이고, 그 외 다수의 은행에도 고려인이 은행장을 맡고 있다. 그뿐 아니라 카자흐스탄 내 전자유통업에서 업계 3위 안에 드는 기업들은 고려인이 운영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국민의 0.6%에 불과한 고려인들은 이주민에서 카자흐스탄 경제 큰손으로 거듭났다.
현장에서 재료가 얼마나 들어가고, 노동가격 검사 하죠,
그럼 소장들이랑 말다툼도 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그분들이 “김옥자 얼마나 못됐는지, 되지 못할 가시나”라고
그랬어요. 그래도 난 지키고 있었어요.
-김옥자 / 67세, 고려인 2세, 통역사
■ 83년간 우리말로 연극 <고려극장>
고려극장은 단순하게 우리말로 공연을 하는 곳이 아닌 우리 민족의식을 일깨워주는 곳이었다. 타향살이에 지친 고려인들이 함께 모여 역사를 들여다보고 우리의 뿌리에 대해 고민하며 더불어 미래를 꿈꾸는 공간이었다. 1937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 되는 순간에도 고려인 1세대 배우들은 시나리오를 챙기고, 연극 도구를 챙겼다. 고려인 1세대부터 시작 되어 아직도 우리 문화의 맥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고려극장에는 현재 배우, 가수, 무용수, 스텝을 포함 해, 약 50명이 일하고 있다.
지금은 고구려 출신인 당나라에서 활약한 <고선지>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공연 준비가 한창이다. 공연 연습 중간 중간 객석에 놓인 대본을 보려고 뛰어다니는 젊은 배우가 있다. 주인공 역을 맡은 신 이고리 씨다. 고려인 4세인 그는 우리말이 서툴지만 이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 남모를 노력을 쏟고 있다. 완벽한 감정 연기를 위해 대본 한 쪽에는 우리말로 필사를, 다른 한 쪽에서는 러시아 말로 번역을 해 그만의 대본을 만들었다. 대본을 번역하는 것만 한 달이 걸렸다. 공연 연습이 끝나면 한국어 개인 과외 수업까지 받고 있다. 사실, 그는 카자흐스탄에서 활동하는 실력파 액션배우다. 하지만 우리말로 연기하는 고려극장에 더 애착이 간다는 신 이고리 씨. 조국의 무대에서 서서 자연스러운 한국말로 한 번 연기해보는 게 그의 꿈이다.
저의 조국의 말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뿌리의 문화와 역사, 성향, 전통 등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극장에서 일하지 않는다고 해도
한국어는 제대로 배우고 싶어요.
그래서 한국에 가고 싶어요.
-신 이고리 / 27세, 고려인 4세, 배우
다큐멘터리 3일 400회 특집 - 카자흐스탄 0.6%의 기적 - 고려인의 도시 알마티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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